김홍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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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19-07-10 09:5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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레포트/인문사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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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홍도에 대한 글입니다. 그는 일곱,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강세황에게 나아가서 서화를 공부했다.11 , 김홍도인문사회레포트 ,
김홍도
순서
출생과 삶 그리고 외모
김홍도는 아무런 병란이 없었고 나라 살림도 넉넉했던 평화스런 시기를 살다간 운이 좋은 인물이었다. 그것은 영조와 정조가 각각 오십이 년과 이십사 년씩 오래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을 위한 정치에 온 힘을 쏟았던 결과였다. 그가 살았던 기간은 영조 21년, 즉 1745년에 나서 정조 재위 이십사 년간을 거쳐 순조 6년인 1806년까지 약 육십 이년간으로서 흔히 조선 후기의 문예부흥기라고도 일컬어지는 시기였다. 김홍도는 서울 생활을 하는 동안 마포 강변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큰데, 그것은 당시 아름다웠던 그 일대를 가리키는 ‘서호(西湖)’라는 지명이 그의 젊은 시절 호(號)와 같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다아 그리고 말년에는 을지로 근처에 있는 서화애호가 김한태의 저택 안에 별채를 갖고 있었다고 전해진다. 그런데 집안에서 화원이 된 것은 그가 처음이었던 것 같으니, 이 점은 보통 화원들이 집안 내림으로 화업(畵業)에 종사해 왔던 예와 견주어 볼 때, 오히려 그의 타고난 재능이 남달랐음을 반증해주는 사실이다.김홍도에 대한 글입니다.
김홍도의 조상은 하급 무관 출신으로서 그가 중인이었음이 확실하게 밝혀졌다.
김홍도는 얼굴빛이 희…(To be continued )
1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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설명
다.
그가 쓴 여러 호 가운데 가장 유명한 ‘단원(檀園)’은 ‘박달나무 있는 뜰’이란 뜻으로 원래 china(중국) 명나라 때의 화가 이유방의 호였는데, 김홍도가 그를 존경하여 그 호를 따온 것으로서 스스로 고매한 명나라의 선비를 본받겠다고 다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아 그는 중인 신분이었으되 스스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교양을 갖추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인물이었다. 당시 강세황은 장기간에 걸쳐 안산의 처갓집에 머물고 있었으므로, 김홍도는 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유년기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된다. 그러므로 그가 함께 어울렸던 인물들 또한 당대를 주름잡던 번듯한 예술인, 학자, 고관이었는데 이용휴, 강세황, 조윤형, 성대중, 이병모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.